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막시밀리안 폰 바익스 (문단 편집) === 초기 이력 ~ [[전간기]] === 이름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귀족 출신이다. 1881년 11월 12일 [[안할트 공국]]의 수도 [[데사우]]에서 [[독일 제국군]]의 [[대령]]의 아들로 태어났다. [[뮌헨]] 소재 빌헬름김나지움(Wilhelmsgymnasium)에 입학하고 [[1900년]]에 졸업해 [[바이에른 왕국군|바이에른 제2기병연대]]로 배속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할 당시에 바익스는 [[대위]]였고 여단부관으로 활동하였으며 이 공으로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1차 대전 종전 후에는 [[1915년]]부터 [[1918년]]까지 제3바이에른군단의 참모본부에서 근무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된 후 군축 과정에서도 요행히 살아남아 계속 복무할 수 있었다. || [[파일:external/ww2gravestone.com/image075_15.jpg]] || ||▲ 왼쪽부터 [[에르하르트 밀히]], [[빌헬름 카이텔]], [[발터 폰 브라우히치]], [[에리히 레더]], 바익스.[* 이 사진을 [[구글]]에 검색하면 "Jewish officers(유대인 출신 장교들)"이란 검색어가 뜬다. 다른 장군들은 유대인인가에 관해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에르하르트 밀히는 유대인이 아닌 것이 확실하게 밝혀진 인물인데, 자세한 내용은 [[에르하르트 밀히]] 항목 참조.] || [[1928년]] 2월에는 [[중령]]으로 진급, [[1930년]]에는 [[대령]]으로 진급하였다. [[1933년]]에는 [[준장|소장]]으로 진급한 후 [[1935년]]에는 기병사단장에서 개편된 제1기갑사단의 사단장으로 전속되었고 동시에 [[소장(계급)|중장]]으로 진급하였다. 기갑은 기병의 방계 후손격인 병과인 만큼 기갑 부대 운용 교리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던 전간기에는 기병 출신 장교들이 기갑 병과로 전속되는 일이 많았는데 바익스도 그런 테크트리를 탔다. 특히 귀족 혈통 출신인 데다 1차 대전기부터 기병에 몸 담아 왔던 바익스는 [[독일 국방군]] 내에서 신뢰를 얻고 있었는데 바익스의 기병 운용법은 베르너 폰 프리치 장군마저도 감탄하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1935년 1월 10일에는 제 1기갑사단의 사단장이 되었다. [[1936년]]에는 기병[[중장|대장]]으로 진급하였고 [[1937년]]에는 제13군단장으로 취임한 뒤, [[오스트리아 병합|오스트리아 합병]]과 [[뮌헨 협정|체코슬로바키아 합병]]에 군단 병력을 동원하여 성사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